-24년 할로윈 기념..으로 쓰고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했어서 미뤄둔 것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승죠세


죽음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부터 죠타로의 옆자리에 함께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가 이미 한 번 내쫓은 불청객은 그 날부터 뻔뻔하게도 옆에 계속 붙어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창가에 앉아 내려다보는 바깥 풍경은 탁 트인 파란 하늘뿐이었고 비행기 가까이에는 아래쪽에 구름이 얕게 깔려 마치 파도치는 바닷가를 보는 듯 했다. 죠타로는 바다를 좋아하는 편이고, 바다 구경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더부룩함을 느꼈다. 단순히 육체적인 피로와 기압차 때문에 생기는 증상인건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하늘은 바다 대신이 될 수 없는 건지.

죠타로는 시선을 창 밖에서 옆에 앉은 죠셉의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옮겼다. 늘어진 검은 전선줄 끝에는 워크맨. 그 안의 카세트 라벨에 적힌 GET BACK. 되찾다. 돌아오다. 죠셉의 목숨을 되찾고 함께 돌아가는 길 위에서 자신이 완료한 두 가지의 과업에 헛헛한 달성감과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그마한 날벌레 하나를 결국 잡지 못해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놓친 것 같은 그런 불쾌감이 남았다. 왜?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는 죽음이 존재할 줄 몰랐던가? 오래 전, 그렇다고 해 봤자 고작 십여 년 전의 기억 속부터 주름져있던 얼굴을 보아왔음에도 그런 생각 하나 못 떠올릴 정도로 멍청했던가.

좌석 손잡이 끝을 꾸욱 눌러 쥔 건 비행기 안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자신조차도.

저 멀리서부터 쫒기고 있다는 이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머리 위인가 발 아래인가. 어쩌면 훨씬 전부터 바로 곁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떡 하니 존재를 드러낸 것을 무시하고 넘기기는 어려웠다.

옆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폐 속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쉰다. 불안은 죠타로에게 있어 익숙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익숙해져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구 위 모두에게 1년은 열두 달 365일이고 가끔은 366일이다. 어찌됐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

1년이 돌고 나이를 한살 더 먹었을 때 죠셉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전 해들과 비슷한 생일 축하 멘트와 더불어 직접 찾아가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하다는 상투적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바쁜 남자의 말들. 수화기 너머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얄팍한 안도로 버텨낼 수 없는 둔중한 불안이 그 무게를 더하는 것을 느낀 죠타로는 입술을 물었다.

외조부에게 물려받은 영민한 두뇌가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이대로는 안 돼.

<고등학교 끝나면 졸업식은 언제쯤 하는지 알고 있냐? 그때 또 시간 넉넉히 내서 찾아가야지.> “—영감.” <응?> “그 전에 잠깐,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올해 중 여유있는 시기가 있나? 하고 묻자 죠셉이 흐음? 하고 물음표로 답했다.

<웬일로 네 쪽에서 먼저 그런 소리를 다 꺼내고. 무슨 일 있어?> “…진로 상담 같은 거다. 영감한테 직접 물어보고 상의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 <허어. 어디 보자. …그래. 대충 10월 말엔 시간이 날 것도 같다.> “여전히 바쁘군.” <뭐. 그렇지.>

자잘한 대화가 몇 번 더 오고 간 뒤 전화를 내려놓고서도 죠타로는 잠시 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홀리가 둘이서 무슨 얘기 했어? 하고 물어보고서야 그는 별 것 아니라 답하며 자리를 떴다.

—무슨 일 없으면 못 보는 사이.

그게 죠셉과 대다수 많은 사람들간의 관계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만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니까. 그건 한 핏줄인 죠타로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남들보다 아주 살짝 더 형편이 나은 점을 따져보자면, 제 쪽에서 무슨 일을 만들어서 가져다주면 몇 달 뒤쯤에는 짧게나마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일 년은 열두 달이다. 열두 달 뿐이다.

어찌 됐건 영감을 만나기 전까지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 위에 놔뒀던 종이뭉치를 집어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영어로 몇몇 학교의 이름과 고리타분한 설명이 적혀진 서류는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이었지만 지금 죠타로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 뒤의 좀 더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 일상의 얇은 막을 찢고 추락하든지, 아니면 깃털도 덜 붙인 밀랍 날개로 발버둥치든지 고르는 것뿐인 비좁은 선택지.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는 보기 드문 판단력의 소유자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결론내리는 행위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선택지가 두개라고 해서 마음이 완벽히 반반으로 갈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죠타로는 명백히 한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보면서도 선택을 보류했다. 아니. 고르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 지도…

죽음은 여전히 바로 근처에. 이역만리 너머에 있었다.

“안다는 것은 먼저 어떠한 것의 존재 여부를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강단에 선 교수의 발화는 메트로놈처럼 단조롭고도 인상적인 리듬으로 이어졌다. 생명 윤리와 철학. 이번 학기에 듣게 된 강의 중 하나. 학생들은 나란히 한 방향을 바라본 채로 앉아서 오리엔테이션을 경청했다.

“그 다음은 동작하는 원리를 머리로 이해하고. 그 다음 단계로는 직접 실행에 옮겨 보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화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앎’ 에 대한 궁극적 목표입니다. 이 수업에서는 학문적인 지식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윤리적 쟁점에 대하여 서로 토론하며 자신의 확실한 견지를…”

수업에 대해 교수가 설명하는 사이 죠타로는 생각했다. 죽음을 인지했다. 원리 또한 이해했고, 직접 되돌려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체화할 수 있는가? 죠타로가 만진 것은 무엇 하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죽은 몸도 멈춘 호흡도 말라붙은 심장도 전부 죠셉의 것이었다. 죠셉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

"예로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동물은 생명권을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죠셉은 낡아가고 있다. 마치 어떤 큰 물리량을 가졌던 움직임의 반동같이 낡아갔다. 고작 몇년 지났을 뿐인데 전에 비해 부쩍 체력이 모자라보이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 보고 넘길 만한 성질의 것일까.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은 검출된 수치들은 확률일 뿐 확신을 주지 않았다. 마이너스 플러스 어느 방향의 것이든 간에.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뭐가 나오냐?

바로 얼마 전, 건강검사 결과지를 살펴보던 죠타로에게 아직은 힘이 느껴지는 굵은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었다. 안심은 되지 않았다. 허나 죠타로는 이제 안심이 아닌 불안을 느낄때야말로 오히려 든든한 아군을 옆에 둔 것 같았다.

“…해서 다음 수업때는 ‘생명은 모두에게 평등히 귀중한가?’ 라는 주제로 종이 1장 내에 자신의 의견을 간략히 적어서 내고, 나중에 희망자들을 뽑아서 토론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봅시다.”

교수의 인사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학생들은 천천히 각자의 짐을 챙겨 자리를 떴다. 죠타로 또한 간단히 과제를 메모한 뒤 가방에 집어넣고 강의실을 나섰다.

그에게는 생명은 평등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단일종 내에서도 그러했다.

가까운 사람—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그 외의 사람. 그리고 대다수의 평범한 양지의 사람들을 적대하는 자들에 있어 죠타로는 각각 그 목숨의 높낮이를 달리 두었고 또한 그 사실에 대해 변명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할로윈을 챙기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모르는 아이들이 찾아오는 것도, 문을 열고 튀어나온 거구의 무뚝뚝한 남성에 아이들이 슬며시 뒤로 멀어지는것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죠타로는 현관에 놓아뒀던 과자와 초콜렛과 사탕을 아이들 각각의 바구니에 조금씩 덜어주는 임무를 완수했다.

”애들 과자 잘 줬어?”

문을 닫고 돌아서자 제가 나서면 될 일을 남 시킨 장본인이 뒤에서 팔자 좋게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주긴 줬어.” ”대답이 영 시원찮네.” ”접객은 영감이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너도 좀 이런 행사에 익숙해져야지.”

그들이 있는 곳은 죠스타 저택은 아니었다. 주택가와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웅장한 저택은 이런 부류의 소소한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외할아버지 부부는 할로윈 행사를 하는 호텔으로 죠타로를 초대했다. 한껏 들뜬 분장한 아이들과 때로는 어른들이 서로의 방문을 두드리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죠셉은 애들처럼 돌아다닐 것도 아니면서 마법사 모자며 긴 망토 같은 가벼운 코스튬을 빌려 입었다. 그는 죠타로에게도 코스튬 권유를 건넸으나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령이나 괴물이 못 알아보게 같은 괴물로 변장하자는 아이디어는… 꼭 누구 같군.” “왜, 평화로운 아이디어 아닌가? 난 마음에 드는데.” ”이런 싸구려 간식에 넘어가는 괴물을 굳이 무서워해야 하나 싶어서.” ”엔간히도 로망이 없구만.”

죠셉의 손이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사탕 바구니로 향하는 것을 살짝 내리쳤지만, 죠셉은 슬쩍 손자의 얼굴만 흘겨봤을 뿐 굴하지 않고 뻔뻔하게 다시 손을 뻗어 바구니 속의 내용물을 집어들었다.

"애들도 아니고. 손에 든 거 내려놔. 이도 다 갈아끼웠겠다 아주 작정을 했군." "겨우 초코렛 한 개잖냐~이거 맛있는거야." ”할머니. 와서 좀 말려봐.”

안쪽 방에서 사진을 정리중이던 수지 큐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지만 나무라는 목소리는 없었다.

”안됐구만. 먹을 거에 있어서 수지는 내 편이라고.”

자주 애처럼 구는 남편의 투정을 굳이 일어나서 말리러 올 생각이 없는 것뿐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실실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초코렛을 흔들어보이는 꼴이 제법 얄미웠다. 그러고서 죠셉은 무슨 속셈인지 죠타로의 손에도 사탕을 하나 집어다 쥐여주었다. 손바닥 안에서 무지개빛 필름 포장이 바스락 구겨졌다.

"..." "할아버지가 주는 거니까 받아 둬. 누가 너한테 사탕 같은 거 챙겨주겠냐?" "...사탕이 필요할 나이로 보이나?" ”네가 몇 살이 되건 나한테는 평생 애기다.”

몇 년째 들었는지 모를 지긋지긋한 소리와 함께 사탕을 쥔 손 위로 주름진 손이 다시 한 번 당부하는것처럼 꾹 감싸쥐어졌다.

”이제 가 볼 시간이잖아. 차 속에서 심심할때 먹어. 수지-! 죠타로 갈 시간이야.” ”어머나? 벌써 그렇게 됐네. 잠깐만~맛있는 거 좀 싸 줄게!”

외할아버지 부부의 대화에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정말 그럴 때였다. 이 계절에는 시간을 가늠하기가 조금 어렵다. 순순히 행거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주워입고 주머니에 사탕을 넣었다.

”잘 가르쳐줬으니 나중에는 네가 죠린한테 할로윈을 가르쳐줘. 같이 옷 입고 사진도 찍고.”

죠셉은 아직 손자에게 할로윈 코스튬을 입힐 생각을 접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참 나중 일 아닌가. 아직 어려서 사탕같은걸 주면 삼킬 수도 있으니 위험하다고 하던데.” ”아무렴. 사탕은 애들 손 안 닿는데 둬야지.”

쿠죠 죠린. 죠타로는 아직도 어색함이 다 가시지 않은 이름을 속으로 되새겨보았다. 원래는 딸과 아내도 함께 이 호텔로 올 예정이었다. 이렇게 일찍 돌아가 볼 예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 SPW 재단 쪽에서 부탁한 일이 발목을 잡았다. 그의 비밀의 특수성과 위험성은 때로 그의 가족의 이동을 제한했다. 한 가정의 편의만을 위해 여러 명이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수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복잡하고 바쁜 일정 중에 잠깐이나마 얼굴을 비춰 준 손자에게 건네주기 위해 쿠키며 음료수를 담은 병 같은 것들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그리고는 손등을 꼭 감싸쥐며 눈을 맞춰왔다. 이런 부분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이좋은 부부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조심히 가렴. 앞으로도 많이 바쁘면 우리 쪽에서 찾아갈까?” ”됐어. 이번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을 뿐이니까.” ”그래. 죠린이랑 새아기랑 잘 지내고.” ”…다음엔 같이 올 수 있게 노력해볼게.”

자기 입으로 말을 꺼내면서도 그는 과연 그것이 몇 퍼센트의 현실성을 가진 약속인지 의문이 들었다.

”무리하지는 마라. 죠타로. 갓난애 데리고 돌아다니는 게 보통 쉬운 일도 아니고.”

똑같이 딸을 키워본 할아버지는 평소보다 조금 어른인 척을 더 얹어서 조언해왔다.

"죠린이 어느 정도 커서 군것질해도 될 나이가 되면 다시 다같이 모여서 파티하자고. 첫 할로윈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탕을 사줘야겠어. 그 때까지는 살면 좋겠구만." ”어유. 이이가 또 주책맞게 엄살은. 정말 엄살왕이라니까.”

할머니의 웃음소리와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자연스럽게 문 밖의 떠들썩한 파티 소음과 섞인다.

”…그럴 계획이 있으면 건강이나 챙기라고.”

퉁명스러운 말과 함께 과자 바구니를 흘겨봤지만 그래도 뭐가 즐거운지 죠셉은 계속 웃고 있었다.

재단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쉽게 끝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자신이 아닌 일반인이 상대했을 경우의 결과를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에 가는 길은 혼자였다. 운전대를 잡고 가깝지 않은 거리를 말없이 되돌아가는데 시간을 쓰는 일은 어쩐지 무의미한 행위인 듯 하고, 또 허전하다. 그는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야 할 것이다.

라디오를 틀 기분도 아닌 터라 주행 소음과 컴컴한 도로 위의 전조등 불빛만을 마주하고 있다가 문득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 속에서 심심하면 먹으라던 사탕.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의 얇은 포장을 벗겨내니 조그마한 레몬색 알이 나왔다. 입에 넣고 굴리면 새콤한 단맛과 한번 이미 녹았던 건지 다소 찐득이는 거칠거칠한 표면이 느껴진다. 심심풀이 간식. 그야말로 할로윈에 찾아온 이름 모를 아이들에게 건네주기 적당한 한입거리 유흥감.

나는 이딴 걸로 속아넘어가줄 만큼 만만한 걸 상대하고 있지 않은데도.

죠타로는 조사를 위해 인적 드문 밤바다를 찾았다. 야광충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진 발광성 플랑크톤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야광충은 파도나 기타 물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푸른 빛을 낸다. 주변에 건물도 가로등도 거의 없어 생물 발광 현상을 관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는 손전등을 들고 파도 치는 해변으로 내려갔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코트자락을 스치는 것과 함께 조용한 바다를 마주하고 있자면 학자의 것과는 다른 감상이 떠오르곤 했다. 어쨌든 그도 인간이었다. 그것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감상적인.

모리오초의 바다에서 걸었을 때는 죠셉이 옆에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종일 아기를 안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지만 무리가 갈 것 같아 대신 넘겨받으려고 했더니 아기가 잔뜩 칭얼거리며 죠타로의 손을 밀어냈었다. 한살도 못 된 아기치고는 호불호도 완력도 확실했다. 죠린은 그 때 여섯살이었다. 여섯살의 딸이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던 것과 비교해서 밀어내는 힘과 당기는 힘 중 어느 쪽이 셌던가? 분명 나이가 더 많은 쪽일테지만, 어쩐지 확답할 자신은 없다.

생면부지의 아기에게 거부당하는 손자를 보면서 죠셉은 또 우스움 반 즐거움 반으로 웃었었다.

파도가 치자 야광충이 빛나며 바다의 윤곽을 장식했다. 손전등을 켜고 가져왔던 작은 병에 바닷물 표본을 조금 담은 뒤 보온케이스에 담았다. 어떤 연구자들은 다소 결벽적으로 온도, 영양, 용존산소량 등의 요인을 맞추어 표본을 보관하고 운반했다. 몇몇은 그것을 낭비라 불렀다. 두 의견 다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으나 두둔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추어 행동할 뿐이다.

형태를 갖춘 생명체인 이상 모두의 죽음이 저마다의 몫만큼 모두의 옆에 있다는 것을 죠타로는 안다. 이해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는…

신발창 밑의 습한 모래가 체중에 자글거리며 뭉그러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운 껍데기를 가지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거워지고 무거워져서 언젠가는 힘이 모자라 탈피에 실패하는 갑각류처럼 껍데기 안에서 제 살에 짓눌려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빨리, 그의 옆에서 먼저 굳어버린 거대한 암벽같은 껍데기를 지닌 사람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눈앞에서 그럴 수는 없다. 죠셉의 죽음이 죠타로의 생의 일부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찾아올 다음번의 불청객을 죠타로가 내쫓을 수 있는가?

죠타로는 또다시 정답이 정해진 선택지를 앞에 두고 침묵했다.

별이 감싼 밤바다에 파도소리가 철썩거렸다. 그건 어떤 외로운 메아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여름 모리오쵸의 바닷가와는 달리 어두운 모래 위에는 한 명의 발자국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함께 거닐었던 모래는 젖은 것 뿐만이 아니었다. 태양의 나라 이집트에 전해내려오던 신화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서로에게 그릇된 연정을 품은 것을 안 오누이의 아비가 한 쪽은 하늘로 한 쪽은 대지로 갈라놓아 둘을 만나지 못하게 했고, 땅에 붙들린 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달피 울어 그것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고.

평소엔 쓸데없는 일로도 눈물을 보이는 주제에 그 땐 전혀 울지 않았지. 미련도 슬픔도 없는 것처럼. 그리운 이들이 기다리는 하늘으로 떠나기 때문이었나? 그렇다면 지금 이건 바다가 우는 소리인걸까. 땅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붙고 싶어서…

비약적인 제 망상에 혀뿌리부터 신물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가 죠셉 죠스타라는 사람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건지 매여있기를 바라는 건지 이쯤 되면 스스로도 모르겠는 지경이었다. 한 가지를 선택한 댓가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아 울컥 억울함이 치고 올라왔다. 약간 긁히는 목소리가 절로 어두운 바다를 향해 내뱉어졌다.

“…내가 뭐. 그렇게 안 될 소원을 바란 건가?”

—살리고 싶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건, 특별한 능력 없는 사람도 하는 일이지 않던가?

먹먹한 질문이 넓은 공간에 부서져 사라지는 동안 대답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특출난 언변으로 살아온 죠셉 죠스타의 죽음이라고 해도 죽음은 죽음인지 어떠한 응답도 없이 그저 그 날부터 말없이 옆에 있을 뿐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제 몫을 챙길 날만 기다리면서 한번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던 것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가족들이랑 같이 와. 눈 앞의 손자가 바로 얼마 전 이혼하고 친권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죠셉의 작별인사를 들었을 때는 자칫하면 병원에서 소란을 일으킬 뻔 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고개만 끄덕이고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를 탔다. 죽음이 그의 뇌에 손가락을 넣어 휘저으며 즐기고 있는 풍경 앞에 세워진 죠타로에게는 선택한 죄로 선택권이 없었다. 그때조차도 죠셉은 웃고 있었다.

죠타로는 그 많던 모든 웃음 앞에서 정말 가능하다면 같이 웃고 싶었으나 언제나 먼저 함께 웃고 있는 것은 그의 죽음이었다.

누구라도 싫을 것이다. 도망칠 것이다. 막고 싶을 것이다. 무엇을 바쳐서라도—

”나는 그런 소박한 것조차, 바라선 안 되는 건가?”

철썩. 하고 파도치는 것과 함께 야광충이 빛났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그는 홀로그램 필름마냥 번쩍이는 바다 위에서 눈속임 사탕 한 알이 되었다.

난 당신의 죽음과 함께 걸었어. 그건 정말로 이상한 경험이었지…

끝없이 이어진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드물게도 사냥감을 놓친 맹수같은 눈을 한 죽음을 바로 옆에서 곁눈질하면서 말야.

멀어져가는 별을 보며 분한 듯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꼴이 한 쪽뿐인 눈에도 어찌나 유쾌하던지.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는 것을 감추지 않아도 녀석은 이 쪽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고, 그러나 별은 더욱 바다 너머 멀어지고, 그래서 나는 계속 마음껏 웃고…

숨 쉬지 않는 모든 것들이 죽어 사멸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별조차도.

당신의 죽음이 당신 쪽을 향해 걷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나. 너무나 안도해버리고 말았어.

end

https://www.youtube.com/watch?v=0S5iyO0Ooe8

죽는 날까지 사랑해 I love you till the day I die

그러니까 오늘은 죽지 마 So don't die today

제발 오늘은 죽지 마 Please don't die today

너 빼고 전부 다 추한 허울일 뿐이야 Everything but you is an ugly lie

그건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아니지 That's not how you pray

그건 네가 말하는 방식이 아니야 That's not what you say

네가 떠났을 때 내가 여기 있다면 난 무너져버릴 거야 If I'm here when you're gone, I'll fall apart

이제 그만 울어 Stop your crying now

이제 그만 울어 Stop your crying now

내 심장 없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What's the point of life without my heart?

넌 이제 죽지 않아 You're not dying now

넌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You'll survive somehow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당신이 떠나고 벌써 밤이 되었어 It's been the night since you've been gone

제발, 나 가야 해 Please I have to go

제발, 제발 나를 보내 줘 Please, please let me go

노래 한 곡 더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What's the use of writing one more song?

왜냐면 그건 당신이 아는 거니까 'Cause it's what you know

왜냐면 그건 당신이 아는 거니까 'Cause it's what you know

그건 너와 나였어, 네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It was you and me, that's what you said

그리고 그건 항상 진실이지 And it's always true

내가 당신과 함께 여기 있지 않잖아? Aren't I here with you?

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면은 죽어있을거야 I may look alive but inside I'm dead

자, 사실로 만들어보자 Well, let's make it true

그 말이 사실이 되도록 하자 Let's make that true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

같이 죽고 싶어? Do you want to die together?

네, 그렇죠. 네, 그렇죠 Yes I do, yes I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