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후, 죠셉은 테이블에 앉아 퍼즐북을 풀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죠타로를 불렀다.

”죠타로. 스타 플래티나가 처음 나타난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하냐?”

꽤나 뜬금없는 타이밍의 질문이었다.

DIO와의 결전이 끝난 뒤, 일본으로 돌아온 죠셉과 죠타로는 쿠죠 저택에서 요양을 하는 중이다. 오늘도 재단의 주치의들이 몸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간 뒤의 한가해진 시간을 각자 알아서 즐기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러다가 대뜸 던져진 질문에, 벽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죠타로는 손에 든 책 너머로 죠셉과 눈을 맞췄다.

”…갑자기 왜?” ”아니 그냥 지금 생각나서. 너랑 나랑 스탠드가 나타난 시기가 차이나는게 신경쓰였기도 하고.” ”흠.”

듣고 보니 유치장을 나온 뒤에 카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영감이 처음 염사를 보여줬을 때, 허밋 퍼플이 1년 전쯤 발현되었다고 했던가. 영감은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이 나나?” ”날짜까지는 기록해두진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그때쯤이었지 아마.” ”나도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 어느 순간에 ‘있다’는 걸 눈치채긴 했지만 그보다 전에 발현했던 걸지도 모르고. 영감이 왔을 때 기준으로 그렇게 오래 전 이야기는 아니긴 해.”

죠타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던 죠셉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툭 하고 굴리듯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내가 죠나단 죠스타와 제일 가까우니까 제일 먼저 스탠드가 생긴 거라면 이해는 되긴 하는데, 혈연 순이라면 홀리가 너보다 먼저였어야 하지 않나?” ”…성정이 안 맞아서 뒤늦게 발현한 걸지도.”

쿠죠 홀리에게서 다시 스탠드가 발현되려는 것 같은 징조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스탠드가 발현될만한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 혈연과 운명 탓에 억지로 발현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섣불리 그렇다 아니다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스탠드에 대한 것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고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지금도 주의해둬야 할 사항들은 차고 넘쳤다.

”그런 의문점까지 다 합해서 재단의 초상현상 연구부서가 시험문제 푸는 학생마냥 잔뜩 날이 서있더라고. 너한테도 어쩌면 종종 이것저것 물어볼지도 몰라. 귀찮아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줘야 한다?”

죠셉이 죠타로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화제를 진행시켰다. 어딘가 어린애를 겁주는 것 같이 들리는 장난스러운 말투는 자칫하면 어두워질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밝게 해보려는 수작 같았다.

”…”

그렇게 따지자면 앞으로 가장 귀찮아질 사람은 죠셉일텐데도.

얼마 안 있으면 죠셉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미뤄뒀던 회사일이 되었건 재단의 새로운 업무가 되었건 그가 해야 하고 그가 아니면 안될 일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한참 소식조차 듣기도 힘들어지겠지. 다소 입안이 텁텁해지는 듯한, 씁쓸하고 분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 부분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아직 죠타로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성인이었다면 어느 정도 대신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죠타로는 그런 생각들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내 일은 알아서 할 테니까 영감이나 잘 해. 병원 싫다고 검진 빼먹지 말고.” ”뭐…이번에는 어쩔 수 없지. 수지도 한소리 할 테고.”

대신 튀어나온 타박에 영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답하는 죠셉을 몰래 슬쩍 보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서 죠셉이 미국으로 돌아갔던게 저번 주의 일이었는데,

”이거야 원… 왔다갔다 정신 사납지도 않나?” ”기껏 왔더니 쌀쌀맞네.” ”번잡스러워. 이렇게 근시일내에 비행기타고 왕복할거면 애초에 왜 간 거야?” ”그건 진짜 급한 불만 끄러 간 거라고.”

어쩐 일인지 그 변덕스러운 노인네는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쿠죠 가의 대문 앞에 다시 나타났다.

사실 죠타로는 올해도 당연히 생일날에 죠셉을 못 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게 생일선물을 우편물로만 받아온지도 몇 년 됐고, 죠셉이 50일 동안이나 회사를 놔두고 자리를 비운 게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아쉬움을 남기고 배웅했던 게 며칠 전인데 오늘 아침에 온 전화를 받아보니 곧 그리로 간다는 소릴 하고서는 지금 이렇게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 것이다.

(상처는 괜찮은 모양인데.)

죠타로 자신의 상처도 아직 완벽히 낫지는 않았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었던 죠셉이 이렇게 먼 거리를 자주 왔다갔다 해도 괜찮은 건지 걱정되었지만, 슬쩍 안색을 살펴봐도 나쁘지 않은 상태처럼 보였다.

”춥다. 들어가자. 아침은 먹었어?” ”아아. 영감은?” ”기내식 먹었어. 치킨 골랐는데 별로더라.”

대충 먹고 와인으로 입가심하고 잤어. 장거리 비행은 그게 제일 중요한건데 말야-따위를 재잘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아직 좀 얼떨떨하고 현실감이 없다. 정말로 손자 생일이라고 일부러 다시 찾아온 걸까?

”홀리는? 집에 없냐?” ”갑자기 영감이 온다고 하니까 잔뜩 들떠서 장 보러 나갔다. 케이크도 큰 걸로 바꿔야겠다면서.” ”오, 홍차나 우유도 있으면 좋겠는데.”

코트를 벗어서 자연스럽게 옷걸이를 찾아 거는 모습이 마치 이 집에 오래 살았던 사람마냥 익숙하다.

”홀리랑 네 아빠한테는 선물 받았어?” ”당신 사위한테는 어제쯤에 우편으로 외국 노래 카세트 모음. 아줌마한테는 목도리.” ”목도리? 설마 작년에 손뜨개질하다 앓아눕는 바람에 손 못댔다던 그거? 고새 완성했다고?” ”지금이라도 나머지 직접 떠주겠다고 난리치던걸 겨우 말려서 백화점에서 샀지.” ”하하하하. 고생 좀 했겠구만.”

죠셉은 웃으면서 캐리어를 들고 손님방으로 이동했다. 무의식적으로 그 뒤를 따라 움직이려던 몸이 한 발 늦게 어색하게 멈췄다.

”…짐 풀면 거실로 와. 차 정도는 내 올 테니까.” ”알았다.”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가며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여행할 때의 습관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는 웬만해선 늘 같이 움직였고 늘 같은 방에서 묵었으니까.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찬장을 뒤져보니 손님용 다과가 있었다. 죠타로는 조금 고민하다가 다과를 한움큼 집어 접시에 올렸다.

차를 따라서 쟁반에 담아 들고 거실로 가자 죠셉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이번엔 얼마나 있다가 가지?” ”하루 자고 내일 저녁쯤에 갈 거야.”

만나자마자 헤어질 시간을 묻는 말이 스스로도 달갑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분명히 작년 이맘때보다는 훨씬 가까이에 있는데도 어쩐지 그때보다 더 서먹한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남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죠셉은 태연하게 대답하며 차를 받았다.

”여전히 바쁘군.” ”네 생각보다는 괜찮아. 그런 칙칙한 이야기는 이제 됐고, 일단 앉아라.”

시키는 대로 맞은 편에 앉으니 죠셉이 몸을 숙여 테이블 밑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듯 뒤적거렸다. 죠타로는 눈으로만 그 움직임을 따라가며 상대가 축하의 말과 함께 선물을 건넬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났다.

죠타로는 무슨 선물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과묵한 성격 탓도 있지만 그건 선물을 주는 가족들이 죠타로를 이미 잘 알고 있어서기도 하다. 할아버지에게서 재작년에 시계. 작년에 지갑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그 선물들은 한동안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죠타로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받은 것들을 잘 애용하고 있던 죠타로는 올해 선물도 그런 종류의 것이려니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가 죠셉이 한 말과 들고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이건 스타 플래티나 거.”

비닐 포장에 담겨있는, 작은 초 하나를 대충 꼽아넣은 조그마한 컵케이크 하나.

”…하?” ”스타 플래티나 생일이 언젠지 모르니까 아예 이 김에 같이 챙기면 좋겠다 싶어서.”

태연하게 설명하면서 비닐 포장을 풀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는 죠셉을 보며 죠타로는 조용히 당황했다. 스타 플래티나의 생일이라고? 영감이 아직 여기서 요양하던 때 그 비슷한 이야기를 입에 담긴 했었다. 하지만…스탠드의 생일?

”오, 케이크 주인이 나왔네.”

옆을 보니 스타 플래티나는 죠타로가 불러내지도 않았는데 어느 샌가 나타나선 죠셉이 내밀고 있는 컵케이크를 멀뚱멀뚱 내려다봤다. 제 주인을 닮은 눈동자 안에 방금 켜진 작은 촛불이 비쳤다.

”자. 후~ 해. 네 케이크니까.”

조심스럽게 눈앞으로 들어올려진 컵케이크를 들여다보던 스타 플래티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훅 하고 짧게 내뱉어 깔끔하게 촛불을 껐다.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죠셉은 웃으면서 스타 플래티나의 손에 컵케이크를 들려주었다. 제 손에 든 걸 이리저리 돌려보는 스타 플래티나에게, 죠타로는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였다.

—스타 플래티나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아가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사실 좀 애매한 편이었다. 멋대로 폭주하던 때도 있긴 했어서 더. 그게 과연 죠타로 자신의 무의식에 비롯한 본능적 행동인지 스타 플래티나의 개별적 자아에 따른 것인지는 분간해내기 어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저러고 있는 행동이 어떤 원리에 기반한건지 아리송해서…

(…심리학 책이라도 뒤져봐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새로 하나 쌓였다.

죠타로가 머리를 굴리고있건 말건 죠타로의 스탠드는 잘 구워진 컵케이크의 관찰이 끝났는지 위에 꽂힌 초를 빼내고 종이 포장을 살짝 벗겨서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먹을 수 있나…? 한 입 베어물었다가 만화영화처럼 바닥에 구르는 거 아닌가. 한 명은 그런 다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한 명은 뭔가 기대하는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스타 플래티나가 컵케이크를 크게 한 입 물었다.

스탠드를 통해 컵케이크의 감각이 죠타로에게도 느껴졌다.
입술에 닿는 표면의 거칠함과 빵의 살짝 폭신한 질감. 그리고…

한 발 늦게 전해져오는 강렬한 짠맛과 감칠맛의 펀치.

”!??!!”

당황스러운 감각에 덜컹. 하고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몸이 움찔했다. 퍼뜩 시선을 돌려보니, 못된 장난을 성공했을 때의 후련함과 뿌듯함이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망할 영감이…!!

”표정 보아하니 맛도 전해지는 모양이구만. 푸하하하!” ”이 망할 영감이….”

속으로 생각하던 욕설을 그대로 내뱉어줘도 죠셉은 낄낄대는 걸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예상했던 달달한 케이크와는 다른 강렬한 짠맛에 죠타로는 오만상을 썼다. …그러니까 빵 위에 설탕가루처럼 보였던 게 다 맛소금이군. 최악의 맛이었다.

그리고 짠맛보다 더 예상치 못했던 건, 스타 플래티나가 컵케이크를 다시 와구. 하고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는 거다.

”?!” ”스, 스타 플래티나. 안 짜냐?”

이 돌발행동에는 신나게 웃던 죠셉도 당황했지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스타 플래티나는 한껏 구겨진 표정을 짓고 있는 죠타로를 쳐다보면서 입안에 든 걸 우물거리다가 죠셉 쪽을 돌아보고, 도로 죠타로 쪽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손 안에 남아있던 컵케이크의 포장을 까서 한번에 입 안에 털어넣었다. 다행히도 아래쪽까진 소금 토핑이 안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혀에 짠 맛이 남은 기분이 들어서 죠타로는 옆에 있던 차를 급하게 들이켰다.

”어라? 지금 이거 스탠드가 제대로 제어 안 되는 분위기?” ”기껏 제어할 수 있게 됐더니 뭐 하는 거야.” ”으으음…? 뭐, 맘에 들어하는 거 같으니까 된 거 아닐까. 하하하…” ”…쯧.”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꼴을 째려보니 슬쩍 눈을 피한다. 그 와중에도 입 안 가득 케이크를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던 스탠드는 이내 꿀꺽, 하고 기어이 제 몫의 생일선물을 전부 삼키는 데 성공했다. 삼켰다고? 잠깐, 컵케이크는 어디로 간 거지? 스탠드를 보지 못하는 사람 눈에는 어떤 식으로 보였던 걸까. 스탠드한테 내장이 있나? 영양분이…가나? 아니면 내가 먹은 것처럼 되는건가?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로 열심히 생각중이던 죠타로에게 죠셉이 테이블 아래서 슬쩍 상자 하나를 꺼내들어 눈앞에 놓았다.

”미안 미안. 이거 받고 봐달라는 건 아니지만, 네 올해 생일선물.”

그동안의 선물들과는 다르게 좀 부피가 있는 상자였다.

”…” ”이 쪽엔 장난친 거 없다.” ”애초에 이딴 장난을 치지 말라고. 유머 감각이 구려.” ”뭣이라.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거든?”

투덜거리면서도 죠셉은 작은 상자 하나를 더 꺼내 위에 올렸다.

”이건 수지가 보내는 선물. 원래는 같이 올까 했는데, 감기에 걸려버려서…” ”괜찮은 건가?” ”심한 건 아니야. 저녁에 선물 잘 받았다고 전화하면 받을 거다.”

죠타로는 일단 위에 놓인 작은 상자부터 포장을 풀었다.

”만년필하고, 손수건?” ”수지가 네 생각 하면서 열심히 골랐지."

검은 바디에 은색 띠가 박혀있는 차분한 디자인의 만년필과 반듯하게 접힌 손수건.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받아왔던 코트나 장갑 같은 것과는 조금 다른, 어른스러운 선물을 일단 도로 곱게 내려두고 이어서 큰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

”…구두군.”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야. 너한테 잘 어울릴 거다.”

광택이 나는 검은 가죽이 멋들어진 곡선을 이룬 구두 한 짝. 화려한 장식같은 건 없었지만 그 자체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좋은 물건이었다. 죠타로는 구두 안에 든 받침을 빼내고 앉은 자리에서 구두를 신어봤다. 직접 재 본것마냥 꼭 맞았다. 작년까지는 사이즈를 몰라도 되는 시계나 지갑 같은 걸 우편으로 받았었는데 말이지.

”일본인이 방 안에서 신발을 신고 있네.”

죠셉이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죠타로는 일어나서 두세 걸음 걸어보고는 발 밑을 내려다봤다.

”가죽 밑창인가?” ”어때. 느낌이 좋지?”

확실히 나쁘진 않았지만 평소에 신고 다니기에는 과하게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일주일도 못 가서 해져버릴 거 같은데." ”대리석 바닥이나 타일 위라면 괜찮아.” ”댁도 아니고 그런 델 다닐만한 일이 얼마나 된다고.”

아스팔트 위를 걷다 보면 금방 닳을 것 같은 붉은 가죽 밑창을 이리저리 딛어보던 죠타로에게 죠셉이 뜻밖의 반박을 건넸다.

”있게 될 수도 있어. 네 대답에 따라.” ”뭐?” ”죠타로. 졸업한 뒤에 미국으로 올 생각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질문의 내용에 죠타로는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폴나레프와 이야기했던 거 있잖아. 화살에 대한 거.” ”아아.” ”넌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남아있고, 그 뒤에 대학까지 다닌다고 생각하면 학생 신분으로 화살을 찾아다니는 건 힘들거라고 본다.”

순식간에 찌푸려진 눈초리가 죠셉을 향했다.

”그런 것쯤 이미 각오했었어.” ”인상 풀어. 뭐라고 하는거 아니야.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지금처럼 일본에 자주 못 오게 될지도 모르고, 전화나 우편으로만 화살이라든지 스탠드 술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것도 한계가 있을 거 아니냐.”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간다고 죠타로는 생각했다. 정론을 얘기할 때의 죠셉은 더할 나위 없이 귀찮은 말싸움 상대다. 듣는 이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입다물고 있을 때를 노려 제 할말만 다 하고 논리를 완성시켜버려 판을 뒤집기 어렵게 만드는 수법을 죠타로도 여러번 당해봤었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좀 달랐다.

평소라면 줄줄 이어서 나와야 하는 말들이 더 길게 있을텐데 갑자기 흐름이 끊겼다. 무슨 속셈인지 몰라 경계하고 있자니 약간 늦은 박자로 조심스럽게 뒷말이 이어진다.

"그래서 말인데…."

죠셉은 품 안에서 플라스틱 카드 같은 것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죠타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얼굴 위로 다시 한 번—이번에는 서서히, 놀라움이 번졌다.

카드 위에는 짙은 푸른빛으로 [SPW]라는 대문자와 함께 [Jotaro Kujo] 라는 글자가 뚜렷이 인쇄되어 있었다.

”네가 동의한다면, 스피드왜건 재단의 초상현상 연구소 각 지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려고. 물론 거절한다고 해도 출입권 정도는 있겠지만.”

그 제의는 분명 침착한 톤이었지만 듣는 쪽에서는 철렁 하고 속에서 큰 파도가 치는 듯 했다.

”권한이라니…” ”조사원들이나, 연구, 자본, 기록, 향후의 계획…”

단어 하나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히는 것을 보며 죠타로는 숨을 살짝 들이삼켰다.

”해당 소속 아래의 모든 인원이 네가 원할 때 수족처럼 움직여줄 거다."

그 말은, 그건. ‘어느 정도’ 가 아니라.

”그리고 수족처럼 둘 사람들과의 첫만남이란 건 언제나 약간의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지.”

양말을 신은 발끝이 가볍게 구두 코를 톡 건드렸다. 쉽게 믿기가 어려웠다. 올해의 생일 선물은 구두 한 켤레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괜찮은건가? 댁보다 오십 살은 덜 먹은 풋내기한테 재단 일을 맡겨도—” ”싫다고는 안 하네?”

당연하다고 외칠뻔한 걸 간신히 참아냈다. 언제나, 언제나 그 옆에 나란히 서고 싶었다. 도움이 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영감은 뭐든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으니까, 직접 본인이 말을 꺼낸 적은 없었지만 여행이 끝나갈 때 쯤 어렴풋이 눈치를 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족들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스탠드에 대해 조사하고 DIO의 정보를 쫒아다니고 있었다는걸, 그러느라 한동안은 딸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했었단 걸.

그런데 이제는 내게 자신이 해 오던 일을 맡긴다고. 그걸, 그걸 어떻게 싫다고 할 수 있을지.

쉽게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하는 죠타로를 앉은 채로 올려다보던 죠셉은 당연한 사실을 굳이 말로 옮겨야 하는 사람처럼 살짝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미국에서는 열여덟이면 차도 몰아.”

그러고는 툭 하고 죠타로의 손등 위를 가볍게 툭툭 도닥이며, 또 파도가 출렁이게 만들었다.

”누구 손잔데, 당연히 맡길 수 있지.”

—역시 할아버지는 죠타로가 원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죠타로의 날뛰는 속마음이 주체되지 않은건지, 그냥 스탠드 본인이 그러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스타 플래티나가 죠셉을 뒤에서 푹 끌어안았다.

"뭐야. 그렇게 좋아?" "시끄러워. 내가 시키는 게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어."

에구구 하고 엄살을 피우던 죠셉은 팔을 올려 누구처럼 곱슬곱슬한 머리를 강아지 다루듯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다음 해에는 진짜 맛있는 컵케이크를 사줄게. 같이 뉴욕 제일의 파티셰를 찾아가 보자고.”

제 후임을 임명한 노병이 뿌듯하다는 듯이 씩 미소지었다. 바깥에서 홀리가 막 돌아왔는지, 죠타로- 아빠- 하는 신난 목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다.

end